'웰컴 투 안동' 여왕을 태운 차는 하회 마을 동구에 쳐진 금줄 아래를 지났고, 길 양쪽에는 큰 손님을 맞는 대형 플래카드와 환영깃발이 나부꼈다. 대영제국의 상징이 안동의 품에 안기고, 신사문화가 선비정신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오전 10시경 경북 예천 공항에 내린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녀를 보기 위해 몰려든 많은 구경꾼들의 환호를 받으며 안동 하회마을로 들어섰다. 낙동강 물이 마을 전체를 빙 둘러 돌아나간다고 해서 '물돌이동'이라고 하는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의 집성촌으로, 전통 가옥과 선조들의 유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마을 전체가 하나의 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
여왕의 방문지로 하회마을이 선택된 것도 이 곳이 많은 전통 유물들을 간직한 국내 최대의 문화 유적보고이기 때문이다.

아담한 돌담길을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온 여왕은 먼저 서예 류성룔의 종가인 충효당(보물 414호)으로 향했다. 충효당 대문에는 갓을 쓰고 도포를 차려 입은 종손 류영하 씨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류씨와 인사를 나눈 여왕은 거릿마당(대문밖에 있는 마당)에 구상나무 한 그루를 기념 식수한 뒤 집안으로 들어섰다. 안마당에서 작은 종부 최소희 씨(70)가 김치와 고추장 담그는 것을 잠시 지켜본 여왕은 방으로 들어가 큰 종부 박필술 할머니(83)로부터 다과상을 받았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해프닝이 있었는데, 여왕은 신발을 신고 방으로 들어가려다가 주위로부터 한국에서는 신발을 벗고 방에 들어간다는 얘기를 듣고는 다시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갔다.

발필술 할머니는 손수 수놓은, 정성이 가득 담긴 밥상보를 여왕에게 선물했다.
충효당에서 나온 여왕은 텃밭에서 소로 밭가는 모습을 구경하면서 담연재로 이동했다. 담연재는 풍산 류씨 집아느이 손님맞이 연회장으로 쓰이던 곳으로, 텔런트 류시원 씨(28)의 본가이기도 하다. 여기로 들어서자, 곧바로 안동 하회별신굿탈놀이 보존회 회원 21명이 준비한 하회별신굿탈놀이 열두 마당 중 여섯 번째인 양반 선비마당 공연이 시작되었다. 10여 분의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내내 여왕은 미소를 띤 채 구경을 했고,
공연이 끝난 뒤에는 '공연단이 어디서 왔는지, 정부로부터 지원은 있는지' 등을 질문하면서 해학적인 탈놀이에 관심을 나타냈다.
탈놀이가 끝난 뒤 여왕은 김창남 씨(54) 등 자신과 생일이 같은 주민 5명과 함께 73회 생일상을 받았다. 이번 생일상은 안동 소주 기능 보유자(인간문화재 12호)이며 전통음식연구회 회장인 조옥화 씨 (78)가 마련한 것이다. 생일상에는 떡, 다식, 약과, 청과 등 47가지 음식이 층층이 올랐는데, 특히 옛날 임금님 상에만 오르던 문어오림(말린 문어의 발을 오려 다양한 모양을 낸 것)과 여러 가지 꽃과 열매로 장식한 꽃나무떡도 올랐다.
푸짐한 생일상에 놀란 듯, 여왕은 '베리 굿'과 '원더 풀'을 연발하며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담연재에서 생일 잔치를 마친 여왕은 하회마을과 안동 시내 중간에 있는 안동 농산물 도매시장에 들러 여러 가지 농산물과 경매장을 구경한 뒤 안동시 서후면 천등산 자락에 있는 봉정사로 향했다. 봉정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인 극락전(국보 15호)으로 유명한 절이며, 고려 및 조선시대의 건축물을 한눈에 볼 수 있어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는
절이다.
봉정사 주지 문인 스님과 총무 성묵스님의 영접을 받으며 경내로 들어선 여왕은 대웅전 앞에서 두 손을 다소곳이 모은 채 불상과 탱화 등을 지켜본 뒤 '아주 아름다운 사찰'이라며 감탄했다. 특히 성묵 스님으로부터 극락전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오래된 하나의 거대한 나무 조각 같다'며 큰 관심을 보였다. 또한 극락전을 구경하던 여왕은 돌멩이 하나를 주워 근처에 있는 돌탑 위에 올려 놓은 뒤 '돌탑을 쌓았으니 복을 많이 받겠다'고 말해 주위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여왕은 봉정사에서 마련한 방명록의 '조용한 산사 봉정사에서 한국의 봄을 맞다.' 라는 글귀 아래 서명을 하고, 문인 스님에게서 '좋은 생각 한번이 만년을 간다'는 뜻의 '일념만년거'라고 쓰인 족자를 선물 받았다. 그러고는 한번 더 절 앞으로 펼쳐진 산봉우리를 감상하며, 선물 받은 족자의 글귀처럼 좋은 생각, 좋은 느낌으로 안동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무리했다.
안동시는 4월 21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을 맞아 생일 선물로 장승-하회탈-법어액자-화간 등 4가지 품목을 선택했다. 이는 수십가지 생일선물 중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엄선한 것이다.
장승은 중요문화재 제 69호인 하회탈춤 이수자 김종흥(44세)이 제작한 것으로 1주일이 걸렸다. 1미터 정도의 미니 장승인데 양반탈과 부네(기생)탈 한쌍이다. 재료는 소나무.

다음은 장승제작자 김종흥과의 일문일답

Q. 영국 여왕에게 장승을 선물하게 된 소감은

A. 한국의 전통 문화물인 양반탈과 부네를 내 손으로 직접 제작하여 세계의 여왕께 선물하게 된 것은 큰 영광이다. 정성을 다해 만들었다.
Q. 특히 생일 술잔을 같이 들게 된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

A. 나의 생애에서 최대 영광으로 생각한다. 영국 여왕은 세계 문화의 여왕이기도 하다. 이같이 훌륭한 분과 생일이 같다는 것은 너무나 뜻밖의 기쁨과 영광이다. 한국을 대표해서 같은 생일을 맞는 일 이상 복된 일이 어디 있겠는가.

Q. 여왕에게 이번에 하회마을을 보여드리게 된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A. 한국을 보려면 안동에 와 봐야 한다는 것을 이번 영국 여왕의 하회마을 방문으로 세계에 알리게 됐다. 무엇보다 여왕께 역사는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보여 드리고 싶다.
[주간현대] 제101호 1999. 4. 25.
21일 73회 생일을 맞은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안동 하회마을 담연재에서 우리 전통 생일상을 받았다. 여왕은 이날 김종흥(사진 왼쪽) 안동 하회마을 별신굿 탈놀이 공연단 대표 등 생일이 같은 주민들과 축배를 들었다.
[조선일보] 1999. 4.22.
무형 문화재 69호인 하회탈춤 이수자이기도 한 김종흥씨는 이날 중역할을 하였다.
안동을 방문하는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의 생일잔치에 초청된 김종흥씨(44, 하회별신굿 탈놀이 중역할)가 여왕에게 선물할 양반탈과 부네탈을 정성스레 깎고 있다.
[영남일보] 1999. 4.16.
안동시는 13일 여왕이 생일상을 받을 때 초대될 주민 선정작업을 벌여 여왕과 양력 생일이 같은 풍천면 주민 5명을 최종 선정했다. 영광의 주인공들은 하회마을 장승공원장 김종흥 씨(45)를 비롯해 김창남(53), 강상호(15), 정은혜(22), 배정순(56) 씨등 5명으로 남자 3명, 여자 2명이다.

김종흥씨는 "영국여왕과 축배를 하기로 선택된 것은 내 생애 최고의 영광이며 여왕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으면 우리 탈놀이의 세계화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며 "현재 여왕에게 선물하기 위해 조그만 장승을 열심히 깎고 있는 중"이라고 말한다.
[경북대동일보] 1999. 4.14.
경북 안동시가 오는 21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와을 맞아 드리게 될 선물 4품목이다. 수십가지 '후보'들 중 가장 한국적인 것들로 선택됐다.

장승은 중요 무형 문화재 69호인 하회탈춤 이수자이기도 한 김종흥씨가 제작중이다. 보통 3m가 넘지만 1m 정도의 미니 장승으로 만들고 있다.
[조선일보] 1999. 4.13.